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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손에 녹음 장비를 들고 다니는 시대다. 스마트폰 덕분이다. 항상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으니 통화 녹음은 기본이고 누구와 대화를 하든 습관적으로 녹음하는 사람도 있다. 촬영과 달리 녹음하는 것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도 나지 않는다.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대화만 보아도 정말 다양한 상황에서 녹음이 이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젠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항상 녹음으로 남는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한 일이다.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것 중에는 우연히 녹음된 경우도 있지만 누군가의 의도가 담긴 녹음도 많이 있다. 녹음될 줄 모르고 한 말과, 녹음으로 남기려고 한 말이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갑질이나 비위를 고발하거나 어떤 비밀을 폭로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 등장한 녹음도 있다.
언론이 이런 녹음을 보도하는 것은 대체로 녹음된 내용에 신빙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녹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기 담긴 말의 의미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보도가 종종 나온다. 녹음이 다양한 맥락을 담고 있는 만큼, 각각의 녹음이 갖는 가치나 신뢰도에 대해서도 면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자칫 녹음을 한 사람의 의도에 말려들어 엉터리 보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생생한 대화가 담긴 녹음 파일을 접하면 쉽게 그 속에서 언급되는 내용들을 검증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유명 인물이면, 특히 대화 내용에 따라서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남의 내밀한 대화를 엿듣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인은 몰라도 언론인은 녹음 파일이 있다고 해서 여기에 함부로 혹해서는 안 된다.
녹음 파일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인 상황의 기록인 경우와 의도를 가진 사람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 그것이다.
먼저 객관적인 기록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어떤 상황이 발생한 것을 자연스럽게 녹음한 것이다. 이런 녹음 파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증거물이 될 수 있다. 자신을 성희롱하는 상급자의 말을 녹음한 파일은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부적절한 행위의 존재를 입증한다. 일부러 성희롱하게 한 뒤 녹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협박이나 부당한 지시나 범행을 모의하는 상황이 녹음된 것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녹음을 편의상 제1 유형이라고 하자.
다음으로 어떤 사안에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서 오간 대화를 녹음한 것이 있다. 일단 이 녹음은 그런 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하지만 이 녹음이 등장인물들이 하는 말의 내용까지 사실이라고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유의해야 하는 부분은, 녹음한 사람은 물론 그의 대화 상대방조차 어떤 의도를 갖고 대화에 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상대방이 거짓을 보태 허풍을 떨었을 수도 있고, 녹음할 줄 알고 일부러 엉뚱한 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기자들이 이런 대화를 담은 녹음 파일을 입수했다고 흥분하면 큰일 난다. 이런 녹음은 제2 유형이라고 부르자.
제1 유형의 녹음은 공적 논의에 필요하다면 언론은 그 내용을 보도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녹음들은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비행기 1등석에서의 갑질,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의 부적절한 발언, 공직자의 부당한 선거 개입 발언 등이다. 이런 녹음은 도청의 결과물이 아닌 한 큰 문제 없이 보도될 수 있다.
문제는 제2 유형의 녹음이다. 어떤 재벌가 인사가 지인에게 자신이나 가족이 검찰에 로비를 해서 사건을 무마했다고 얘기하는 녹음은 그런 사실의 입증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가족 내에서 벌어진 비위를 실토하는 양심 고백일 수도 있지만 자기네 가족의 영향력을 과장하려고 지어낸 말일 수도 있다. 나아가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을 음해하기 위한 말일 수도 있다.
이런 대화를 녹음 파일만 믿고 보도에 나서는 건 무모한 일이다. 자신이 뭔가를 했다는 고백도 아닌, 그저 실무 직원의 “들었다”는 말 하나를 믿고 엄청난 의혹을 보도하거나, 상대가 녹음할 것을 미리 눈치채고 사실과 달리 결백을 주장하는 비위 관련자의 말을 그대로 믿고 보도한다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 것인가.
굳이 AI를 이용해 조작한 말이 아니라도, 언론인이라면 단독으로 녹음을 입수했다는 이유만으로 ‘심장’이 빨리 뛰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녹음 파일이 항상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