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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의견의 구분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다. 신문윤리강령은 “보도기사는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여 작성해야 한다”(제3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고, 언론윤리헌장 역시 “사실과 의견은 구분”되어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 사실은 객관적이고, 의견은 주관적이라는 점에서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는 규범은 지극히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언론 관련 판결을 살펴보다 보면 사실과 의견이 과연 그렇게 선명하게 구분될 수 있는지, 그 경계선은 어디인지 의문이 생기곤 한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종북’, ‘주사파’라는 표현이 “원고들이 취한 정치적 행보나 태도를 비판하기 위한 수사학적 과장”에 해당한다며 사실 적시가 아니라 의견 표명으로 보았다. 16년 전 판결에서는 같은 표현에 관해 사실 적시로 보았던 대법원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 배경에 관해 “위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십여 년 이상 지나는 동안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발전하고, 그동안 표현의 자유가 계속 확대되어 온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주사파’라는 용어에 대한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사실과 의견의 구분은 법의 영역에서도 중요하다. 사실이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지만 의견이면 어렵다. 사실이어야 정정 및 반론보도의 대상이 되고 의견은 원칙적으로 될 수 없다. 명예훼손 사건에 관한 판결문에서 대법원이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사실의 적시’는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이라고 거듭 밝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토록 중요한 사실과 의견의 구분인데, 세상이 바뀌면 표현의 성질도 달라지는 것인가. 십수 년 전이었다면 사실 적시로 여겨져 명예훼손 책임을 면하기 어려웠을 ‘종북’, ‘주사파’ 등의 표현이 이제는 더 이상 사실의 적시로 취급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사실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를 ‘증거’나 ‘객관성’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라고 본 미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갠스의 관점은 사실과 의견의 이분법적 구분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실과 의견은 개념상 분리되는 것이 맞다. 사실은 객관적 검증의 영역에 속하고, 의견은 주관적 평가의 영역에 속한다. 사실은 증거를 통해 참인지 거짓인지 분간할 수 있지만, 의견은 해석과 평가의 문제로서 타당한지 부당한지가 문제 될 뿐이다. 이렇게 보면 사실과 의견의 경계는 참으로 선명하다. 그런데 추상적 개념의 세계가 아닌, 구체적 현실의 세계로 들어오면 선명했던 경계가 다시 흐릿해진다.
2015년 6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던 박래군 4·16연대 위원은 경찰의 4·16연대 사무실 압수수색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회견에서 박 위원은 정작 압수수색할 곳은 청와대라며 “국민들이 그런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4월 16일 7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았을 때 뭐하고 있었냐? … 피부미용, 성형수술 등등 하느라고 보톡스 맞고 있던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박 위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고,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도 문제의 발언이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하급심에서 사실 적시로 본 것을 대법원은 의견 표명으로 보았다. 심급에 따라 법관들의 판단이 달라졌다. 대법원의 핵심 논리는 의혹 제기는 맥락에 비추어 의견 표명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당 발언은 국가적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명확히 밝혀져야 할 대통령의 행적에 관한 의혹을 제기한 것이며, 이러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보았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거나 뒤섞어도 된다고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사실과 의견의 구분은 여전히 중요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정된 이분법이 아니라 더욱 정교해지고 새로워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저널리즘 원칙으로 여겨졌던 사실과 의견 구분의 방점은 대체로 ‘의견’보다는 ‘사실’에 있었다. ‘주관적 의견’은 ‘객관적 사실’에 비해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고, 좋은 저널리즘은 가능한 한 의견을 배제한 채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처럼 이해되었다. 그러나 사실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과정에도 기자의 주관이 개입된다. 무엇을 보도할지, 어떤 순서로 배치할지, 어떤 맥락으로 기술할지, 어떤 용어나 표현을 사용할지에도 평가가 수반된다. 주관이나 의견, 평가 없는 기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의견은 숨길 수도 없고, 어쩌면 숨길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문제는 의견 그 자체가 아니라 의견을 의견이 아닌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데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것은 기자의 의견임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기사의 맥락에 비추어 의견 표명의 영역을 점점 넓히고 있는 일련의 언론 판결들을 보며 갖게 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