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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저널리즘 현장에서 미국 언론인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규정한 디지털 파괴 상황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이 상황은 이 두 사람이 2001년 함께 초판을 냈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의 탄생 배경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이 급속히 확장하며 다양한 SNS 와 유튜브 등이 등장했다. 그러자 모든 사회의 정보전달 체제가 이 디지털 도구들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통적 신문과 방송은 급격한 독자 이탈과 광고 감소를 경험하며, 생존을 위한 모색을 계속 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A.I.(인공지능) 시대가 급속히 진행하며 이 파괴적 현실은 속도가 더 빨라졌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의 제작은 1997년 코바치가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하버드 대학 니먼재단에서 시작됐다. 코바치는 당시 미국 언론계의 주요 인사 20여 명을 초청해 저널리즘의 위기를 진단하고,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연구모임을 시작했다. 이들은 그 뒤 3년여에 걸쳐 다양한 조사와 연구 모임을 거쳐 이 책을 집필하기로 결정했다.
헌법으로 저널리즘의 가치를 뒷받침하고, 건강한 공론장을 유지해 오던 미국의 경우 거의 3분의 1에 가까운 지역 신문들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신문 없는 지방 도시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뉴스 사막’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애드게이트 기자가 쓴 포브스지 기사에 따르면, 노스 웨스턴 대학의 메딜 저널리즘 스쿨은 「지역 신문의 현황 보고서」에서 2005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의 지역 사회에서 2,900개 신문이 문을 닫았다고 보고했다. A.I. 시대, 암울한 지역 신문의 현실을 보여주는 보고서다.
지역에서 일하는 기자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2005년 이후 회사를 떠난 기자는 무려 4만3000여 명에 달한다. 이는 전체 지역 기자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애버나티 교수는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 사회에서 신문이 사라지는 것은 “미국 민주 공동체에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신문과 방송사들도 최근 디지털 시대의 어려움과 마주하고 있다. 신문의 유료 발행 부수는 급격하게 줄고 있다. 신문 부수를 조사하는 ABC 협회는 자료를 제대로 발표하지 못한지 여러 해가 지났다. 우리 사회에서도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회사들, 그리고 다양한 소셜미디어와 개인화된 유튜브 채널들은 기존의 매체들로부터 끊임없이 독자와 시청자를 탈취해 간다. 한국의 언론사들은 아직도 이러한 생태계 변화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 어려움을 타개할 탈출로는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할 때 가능해 보인다. 첫째 요소는 신문 방송사 발행인의 과감한 투자 확대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저널리즘의 가치를 뼛속 깊이 새기고 그러한 바탕에서 수준 높은 언론사를 만드는 데 재원을 아끼지 않는 지도력이 있으면 현장은 바뀔 수 있다. 현재 이러한 자질을 보여주는 발행인은 뉴욕타임스의 A. G. 설즈버거가 대표적인 인사다. 안타깝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요소는 현장 기자들이 출고하는 기사의 품질을 구조적으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다. 기자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현실에 대한 기자들의 자성은 더욱 시급하게 요청된다. 코바치와 로젠스틸은, 특히 A.I. 시대에는, 뉴스 소비자인 시민과 기자들이 공유하는 퀄리티 저널리즘 가치관이 공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이익을 올리는 데만 집중하는 플랫폼 기업이나 개인 유튜버들의 부작용을 극복할 조건을 갖출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기자와 시민의 협력적 문화가 체질화해야한다는 게 코바치와 로젠스틸이 주장하는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다. 기자들이 일방적으로 기사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의 생활 리듬을 고려하며 시민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보도 주제와 방향을 정하는 방식으로 기사 제작 과정을 혁신시켜야 한다는 게 이들의 제언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조회수에만 집중하는 개인 미디어나 유튜버들은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퀄리티 저널리즘을 일상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언론이 한국 사회의 민주적 토론 문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한국 저널리즘은 아직 모든 시민이 퀄리티 저널리즘의 가치를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젊은 기자들의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도 속보 중심의 조회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외세의 지배, 한국 전쟁, 군사 독재 등을 겪으며 한국 저널리즘은 체계화된 저널리즘 철학과 윤리 기준을 준비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 디지털 파괴가 찾아왔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언론인들이, 니먼 재단 그리고 코바치와 로젠스틸의 노력을 기억하며, 한국 민주 사회의 중심 기관인 저널리즘이 A.I. 시대를 슬기롭게 버텨낼 수 있는 한국 현실에 적합한 저널리즘 윤리와 철학 체계의 틀을 연구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