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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윤리 소식 제310호  [2026.02]

[4면] [윤리의 窓] 유사언론 대응 2년, 언론은 무엇을 지켜냈는가

유사언론 대응 2년, 언론은 무엇을 지켜냈는가

  •   광동제약이 ‘유사언론심의전문위원회’를 발족한 지 2년이 됐다. 2024년 2월, 광고·협찬을 미끼로 한 압박성 보도와 취재를 가장한 거래 요구, 보도를 무기로 한 협박성 접근에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기업이 언론의 관행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일은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이 위원회의 의미는 단일 기업의 대응을 넘어 한국 언론 환경 전반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준점이 되고 있다.

      광동제약의 문제 제기 이후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는 유사언론 대응 매뉴얼을 정비하거나, 광고·홍보 부서와 법무 조직을 중심으로 ‘보도 거래’에 선을 긋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는 언론을 적으로 돌리기 위한 조치라기보다, 정상적인 취재와 비판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 구축에 가깝다. 그만큼 언론과 기업 사이의 관계가 이미 왜곡돼 있음을 방증한다.

      유사언론의 본질은 단순히 질 낮은 기사나 상업성의 과잉에 있지 않다. 핵심은 저널리즘의 형식을 유지한 채 거래 논리를 작동시키는 구조다. 공익을 내세운 비판 기사가 협상 카드가 되고, 거래에 응하지 않으면 압박이 시작되며, 응하면 침묵이 뒤따른다. 이 과정에서 보도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압박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기업도, 독자도 아닌 정상적으로 일하는 기자들이다. 취재 요청 자체가 의심받고, 정당한 비판 기사마저 거래의 연장선으로 오해받는다. 기업은 점점 방어적으로 변하고, 언론은 스스로 신뢰를 잠식한다.

      이와 맞물려 지난 1월 초 불거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장남 음주운전 기사 삭제·수정 사태는 한국 언론의 취약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다수 언론사가 현대차 쪽의 요청을 받고 기사 제목이나 내용을 수정했고, 그 과정에서 ‘정의선’이라는 이름과 ‘장남’이라는 사실관계가 ‘현대차’, ‘자녀’로 바뀌었다. 특히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창간 정신으로 내세워온 한겨레까지 이 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이 사태가 상징적인 이유는, 유사언론이 아닌 이른바 주류 언론 내부에서조차 편집권과 광고 권력이 충돌하는 장면이 공개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사언론 문제를 ‘외부의 일탈’로 치부해온 인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거래의 방식만 달라졌을 뿐, 압력과 순응이라는 구조는 동일하다. 노골적인 협박 대신 ‘요청’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기사 삭제 대신 제목 수정이나 표현 완화가 동원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 스스로 세워온 윤리 기준은 상황 논리로 대체되기 쉽다. “다른 언론도 했다”, “표현의 문제일 뿐이다”, “기사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반복돼 왔다. 그러나 이런 예외들이 누적될수록 독자가 체감하는 신뢰의 손실은 훨씬 빠르게 커진다. 결국 사회에는 ‘편집권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험한 메시지가 남는다.

      광동제약이 2년 전 내세운 ‘원칙적 대응’은 바로 이런 회색지대를 거부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는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보도를 거래의 수단으로 삼는 관행과는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선 긋기다. 기업이 이런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밖에 없을 만큼, 언론 환경은 이미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흐려진 상태다.

      지금은 AI시대다. 생성형 AI가 기사 작성과 자료 분석, 정보 검증까지 수행하는 환경에서 여전히 과거 방식의 보도 거래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에 가깝다. 기술은 진화했지만, 일부 언론의 행태는 더 교묘해졌다. 다만 AI는 가능성도 함께 제시한다. 반복되는 압박성 접근과 유사한 기사 패턴, 거래성 요구는 데이터로 남는다. 명확한 기준과 사회적 합의가 전제된다면, AI는 유사언론을 식별하고 걸러내는 보조 장치가 될 수 있다.

      이 질문은 언론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기업 역시 어떤 언론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침묵을 사는 관행이 반복될수록, 정상적인 비판과 감시까지 함께 무력화된다. 결국 이는 기업 스스로의 신뢰 기반을 허무는 결과로 이어진다. 유사언론에 대한 단호한 대응은 언론을 위축시키는 조치가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된 저널리즘이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되살리는 선택일 수 있다.

      광동제약 유사언론심의전문위원회 발족 2주년은 그래서 과거의 선언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시험대다. 이 시험에 언론과 기업이 함께 답하지 않는다면, 같은 논란은 다른 이름으로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보도를 거래 수단으로 사용하지는 않는가. 그리고 그 대가를 누가 치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