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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세미나]  한국의 언론자율감시기구 현황과 과제

2005.09.28. - 2005.09.29. / 발제자 : 성병욱 / 주제 : 신문자율규제 기구의 현황과 과제

조회 : 1368
  • 신문자율규제 기구의 현황과 과제

    성 병 욱(세종대 언론홍보대학원장)

    1. 신문윤리기구의 존립명분

      언론인은 일선취재 기자에서부터 편집인에 이르기까지 취재, 기사작성, 편집, 해설, 논평을 엮어 내는 길목마다 상상하기 어려운 윤리적 판단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결정을 내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을 하는 과정에선 준거로 삼을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선택할 때마다 의존하는 준거가 각종 언론윤리강령이라는 규범들이다. 소속회사, 업종별 언론인기구, 전국적 언론인 조직 등에서 제정한 윤리강령과 실천요강들이 바로 윤리적 선택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언론의 윤리적 문제를 자율적으로 다루는 기구의 명칭으로는 세계적으로 신문평의회(Press Council) 또는 신문윤리위원회(Press Ethics Commission)로 불리는 것이 가장 많다. 신문평의회/윤리위의 근본취지는 대내적으로 자기규율(self discipline)을 통해 언론의 방종을 막고, 이를 통해 대외적으로 자기 방어를 굳건히 해서 언론자유를 수호하자는 것이다. 즉 이 기구들은 신문의 윤리강령 준수 여부를 감시· 독려하고 위반사례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등 자기규율을 강화함으로써 신문에 대한 외부로 부터의 불만을 가라앉혀 실질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자기방어를 꾀하고 있다.
      신문의 초창기에서부터도 그랬지만 권력은 끈질기게 언론에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언론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권력의 언론통제 유혹도 커지기 마련이다. 전제· 권위주의 통치 아래선 그 압력이 물리적· 폭력적 성격을 강하게 지녔던 반면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입법에 의한 규제 시도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정치권력의 간섭과 입법에 의한 규제에서 벗어나면서 보다 윤리적 언론이란 공익적 대의명분을 자율적, 독자적으로 실천해 보려는 시도가 다름아닌 윤리강령의 제정과 그 적용을 위임받은 신문평의회/윤리위의 활동이다.

    2. 신문윤리기구의 세계적 현황

      2001년 현재 전세계적으로 29개국에 이런 신문윤리기구가 있다. 이중 10개국은 윤리기구의 설치 운영의 계기가 자율적인 반면 18개국은 입법조치로 이 기구를 설립했다. 한국의 경우는 좀 독특해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자율기구지만 비슷한 역할을 하는 언론중재위원회는 법에 의해 설립된 기구다. 그래서인지 2001년 11월 P.B.Sawant 세계언론윤리위협회(WAPC) 회장이 발표한 논문에는 한국의 언론윤리기구가 입법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 집계돼 있다.
      자율적인 윤리기구를 가진 10개국은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벨기에· 에스토니아· 호주· 뉴질랜드· 탄자니아이며,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도 자율적인 언론윤리기구를 가지고 있다. 법에 의해 설치된 윤리기구가 있는 나라는 덴마크· 네델란드· 포르투갈 외에는 대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자율적인 윤리기구를 가진 나라도 스웨덴· 노르웨이 같이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설치한 경우가 있고, 영국· 독일· 한국 등 언론규제를 위한 입법의 위협을 회피하기 위해 설치한 경우도 있다.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된 신문자율기구는 신문에 대한 외부의 비판이 입법 등 타율적 규제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신문에 대한 불만을 심의· 처리해 그 결과를 공표하는 역할로 출발했다. 이 기구는 발행인과 언론종사자 사이의 중재기구로서 일종의 내부징계위원회(1916년)로 시작됐다가 외부의 불만 제기자에게 문호를 연 윤리위원회(1938년)로, 그 다음에는 이해관계 없는 제3자도 참여하는 신문평의회(1973)로 변신해 왔다.
      이러한 스웨덴의 신문윤리기구가 주변 국가에도 영향을 미쳐 노르웨이(1938년), 영국(1953년), 독일(1956년) 등 수개국에 파급됐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적 윤리기구들은 회원 신문사들의 소극적인 태도와 운영 부실로 개혁을 거듭하면서 고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기에 모범적 운영을 해 왔던 영국의 경우 1960년대 들어 비판이 고조되자 1963년 제2차 왕립신문위원회의 권고로 개혁을 단행했지만 선정적인 대중지들이 신문평의회의 평결을 자주 무시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이에 최대 기자노조인 전국 저널리스트 조합이 1980년 신문평의회의 비효율성과 개혁 능력 부족을 비판하면서 탈퇴해 위기를 맞았다. 이렇게 신문계의 자율규제능력이 불신을 받게되자 정부 및 의회에서 언론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다시 나타나게 됐다. 이에 대응해 1989년 21개 주요 일간지가 프라이버시 존중, 반론기회 부여 등을 내용으로 하는 행동 강령을 채택하고 신문평의회도 행동강령 제정 등 기능강화를 다짐하고 나섰다.
      그러나 의회 특별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인 정부의 입법에 의한 윤리위 설치 위협으로 1991년 실적이 부진했던 신문평의회 대신 ‘신문불만처리위원회’ (Press Complaints Commission)를 발족시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신문불만처리위는 심의 적용 전거로 16개항의 윤리강령과 18개항의 실천요강을 제정해 자율규제 실적이 부진하면 입법조치한다는 조건하에 연명하고 있다.
      독일의 신문평의회는 신문들이 평의회 결정사항을 보도하지 않아 1982년말부터 활동이 휴면상태에 있다.
      미국에서도 1973년 전국뉴스평의회 (National News Council)가 발족돼 언론기관의 취재· 보도활동을 감시했으나 언론은 물론 시민들로부터도 호응을 얻지 못해 1984년 문을 닫기에 이른다.

    3. 신문윤리기구의 성격과 기능
      
      신문평의회/윤리위는 독립적, 비정부적, 비영리적 자율규제기구다. 이 자율윤리기구의 독립성은 그 구성과 재정의 독립성에서 비롯된다.
      스페인의 언론윤리학자 에르셔 (R.Herrscher)는 윤리강령 집행기구가 권위를 인정받고 존중을 받기 위해선 그 기구와 구성원들의 신망, 독립성, 대표성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완트 세계언론윤리위협회 회장은 평의회/윤리위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① 내부적 자율성 (정부 관련인사 배제) ② 구성원의 독립성 ③ 뚜렷한 목표 ④ 운영절차의 개방 및 투명성 ⑤ 운영의 독자성과 운영자금의 투명성 ⑥ 인쇄-전자매체 규율기구의 단일성 ⑦ 심의결정의 강제성 ⑧ 심의결정의 존중-준수 ⑨ 수용자 일반과 해당 언론매체의 신뢰와 존중 등 9가지를 제시했다.
      사완트가 제시한 요건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희망사항으로 보이나 역시 핵심은 윤리기구의 자율성, 구성 및 재정의 독립성, 심의 결정의 존중 및 준수로 요약할 수 있다.
      스웨덴의 신문평의회는 헌장에서 위원을 지명하는 단체와 그 위원수를 전국기자협회, 기자노조연맹, 발행인협회에서 각각 2명, 국회 옴부즈맨과 변호사협회회장이 함께 4명을 선정하도록 구체적으로 규정해 지명자의 재량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영국의 신문불만처리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지명위원회가 위원들을 지명하도록 돼 있는데 언론계 인사가 전체위언의 절반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재정도 영국에선 위원을 지명한 단체들의 출연금, 스웨덴에선 위반 매체에 부과된 벌칙금으로 자율적으로 조달하고 있다.
      자율윤리기구에선 신문에 대한 일반국민의 불만을 처리하는 데 있어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윤리기구의 결정이 일반 국민의 납득과 지지를 얻지 못하면 언론에 대한 영향력과 기구 자체의 존재명분이 즉각 한계에 부닥친다. 그런데 국민의 지지는 윤리기구의 결정에 대한 언론의 성실한 보도와 해당 신문사의 존중 및 수용이 그 전제다. 영국· 독일·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 윤리기구의 결정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기피와 해당 언론사의 불성실한 대응은 자율윤리기구의 위기, 나아가서는 종말을 가져오게 된다.

    4. 한국의 신문윤리기구-발족과 변모과정
      
      우리나라는 언론에 의한 피해구제 수단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법원-신문윤리위-언론중재위의 3원 구조를 갖고 있다. 상당수의 나라는 자율적인 윤리기구와 사법기관의 2원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한국의 언론중재위와 똑같은 기구를 두고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악명 높았던 ‘언론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언론중재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우리나라도 여느 나라처럼 자율규제기구인 신문윤리위와 사법기관의 2원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신문윤리위원회는 자유당정권의 끈질긴 신문규제입법 움직임에 맞서 1957년 4월 7일 신문· 통신의 편집간부들이 신문편집인 협회를 결성하면서 제정한 신문윤리강령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윤리강령의 선포는 언론인 스스로 언론에 대한 자율적 규제제도를 마련, 전문직업이 지니는 높은 윤리성을 강조함으로써 스스로 전문직임을 표방했다는 뜻을 지녔다. 또한 외부로부터의 언론 통제에 대응하는 자구책을 마련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언론인 스스로 지키고 쟁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도 자유당 정권은 언론의 저항을 봉쇄하기 위해 1958년 1월 언론조항을 포함한 협상선거법 개정을 강행하고, 그해 12월 언론조항을 담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야당의원을 몰아낸 가운데 단독 통과시켰다. 이러한 강압정책은 경향신문 폐간처분 (1959년 4월)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4·19 학생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정기간행물의 허가제가 등록제로 바뀌면서 신문· 통신을 포함한 각종 간행물이 급증했다. 이러한 양적 팽창의 이면에서는 언론의 질적 저하와 함께 기자들의 부패· 타락, 무책임한 보도· 논평 등 여러 부작용이 뒤따랐다.
      이에 1961년 4월 신문편집인협회 총회는 이미 제정된 신문윤리강령의 실천요강을 제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기구로 신문윤리위를 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언론인 정화, 언론사 정비를 포함한 강력한 언론통제를 가하게 되자 언론계에선 자위와 자구의 대응책으로 7월 30일 신문윤리위회칙과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제정하고 9월 12일 한국신문윤리위를 출범시켰다.
      신문윤리위 창립에 즈음해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격려사를 하는 가운데 “언론의 자율· 자숙이 없는한 이를 타율적으로 제약할 방안이 언제까지나 논의되고 있는 것은 한없이 불행한 일”이라고 언급, 언론이 정부시책에 순응하지 않으면 타율적인 규제를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신문윤리위 발족에 앞서 신문편집인협회가 제정한 신문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을 8월3일 신문발행인협회와 통신협회가 그대로 채택하고 그 회원사인 신문사와 통신사도 모두 채택함으로써 신문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은 한국 언론의 대표적 윤리기준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초기 한국신문윤리위는 언론계 대표 4인과 공중대표 4인, 그리고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위원장을 맡았다. 윤리위는 회칙에 따라 각 신문사와 통신사의 발행인· 편집인· 주필· 편집국장으로부터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접수하고 공중들로부터 제기되는 언론불만사건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위원회가 설치된 1961년 9월부터 1963년 3월까지 초기 1년반동안 위원회는 20건의 제소를 접수해 언론사에 대한 경고 5건, 주의환기 2건, 정정 5건, 해명 4건, 해당기사의 취소 및 사과 1건, 중재취하 1건, 기각 2건 등의 결정을 내렸다. 세계 어느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언론자율규제기구로 정착할 수 있는 바탕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민정이양으로 선거에 의해 새로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1월 10일 연두교서에서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창달을 위해 언론윤리위 기능을 조장하고 언론자율화를 촉구할 것임’을 주문했다. 이 주문은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신문윤리자율규제기구의 제도화가 아니라 입법을 통해 타율적으로 규제할 수도 있다는 복선을 깔고 있었다. 한· 일 협정 반대 데모의 격화에 따라 비상계엄을 선포한 박정권은 데모가 격렬해진 원인의 하나가 언론의 선동에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비상계엄 해제의 후속조치로 언론규제를 위한 특별법인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1964년 8월2일 국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언론의 자율규제를 위해 언론윤리위원회를 설치하며, 신문· 통신· 잡지· 방송의 대표는 의무적으로 윤리위원회 위원이 되고, 윤리요강을 제정 공표하며, 윤리상설기구로 심의회를 두고, 심의회는 문제된 언론 내용을 윤리요강에 따라 판정하고, 모든 언론기관은 판정내용을 보도할 의무를 지도록 했다. 이 법안은 자율적으로 추구해야 할 언론의 윤리를 법률에 의해 타율적으로 강제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또 정부가 언론의 윤리 확립을 빙자해 언론을 통제할 위험이 있었다. 신문편집인협회와 일선기자들을 중심으로 언론윤리위법 철폐 투쟁이 강력히 전개되고 야당, 대한변호사협회, 예총 등이 이에 가담하자 박대통령은 9월9일 언론계 원로들과의 면담에서 이 법의 시행을 보류하기로 후퇴했다. 이 투쟁과정에서 차장급이하의 일선기자들은 한국기자협회를 결성하게 된다.
      언론윤리위법 시행 보류와 함께 언론계는 신문윤리위의 자율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회칙을 개정했다. 한국기자협회도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윤리기준으로 추가 채택하면서 윤리위원회에 기협 대표를 위원으로 파견했다. 또한 신문윤리위에 발행인협회· 편집인협회· 기자협회 대표 각 2명과  IPI 한국대표· 신문연구소 대표 등 8명으로 구성된 운영협의회를 발족시켜 윤리위 운영자금 조달 등을 맡게 됐다. 당초 윤리위 자금조달은 외국처럼 각 회원사의 분담금으로 충당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그것으론 충분치 않아 정부가 자진해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재정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거절하고 운영협의회가 각 신문사와 정·재계로부터 찬조금을 받아 기금을 조성하고 관리하도록 했다. 운영협의회는 1970년 이사회로 개편돼 윤리위원 위촉과 윤리위원장 인준 등 일정한 인사권과 기금관리 등 재정운영을 맡게 됐다.
      운영협의회 설치 직후 윤리위에 심의실을 신설해 윤리위가 적극적으로 언론보도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 위반여부를 심의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또한 국회의원 2명을 윤리위원으로 위촉하고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 위반 언론사에 대해 기간 언론단체 회원자격 정지 및 제명 등을 제도화했다.
      언론의 자율규제 강화를 조건으로 언론윤리위를 법제화해 언론을 통제하려는 박정희정권의 의도는 일단 후퇴한 듯 보였다. 그러나 정부는 언론이 무턱대고 정부를 비판하기 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지고 국가개발에 능동적으로 동참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일부 언론학자는 근대화의 추진 과정에서 신문이나 방송 같은 매스 미디어가 혁신의 전파자로서, 혹은 발전 지향적인 태도나 가치관의 형성자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이른바 ‘발전 커뮤니케이션’론과 ‘사회적 책임주의’이론을 빌려 정부의 언론 동원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박정권이 제정한 ‘한국신문윤리위법’과 법정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는 1964년에 폐기된 것이 아니라 ‘시행보류’로 1980년까지 잠자고 있었을 뿐이다. 시행령만 제정하면 언제고 깨어날 수도 있었다. 결국 1980년 이 법을 폐기시킨 신군부의 언론기본법은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설치목적과 기능이 중복 또는 경합돼 윤리위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언론중재위원회를 만들어냈다. 법정기구로서 언론중재위의 출범은 한국신문윤리위의 자율규제 활동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더구나 금년에 새로 제정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으로 중재위의 기능이 더욱 확대· 강화돼 자율규제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의 입지는 더욱 도전을 받게 됐다.

    5.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현황과 문제점
      
      신문윤리위는 언론윤리법파동을 겪으면서 윤리위의 구성을 바꾸고 심의실을 신설해 자체 심의활동을 강화했다. 윤리위는 발행인 2명, 편집인 2명, 기자 2명, 국회의원 2명, 변호사 1명, 교수 1명, 윤리위 추천위원 2명 등 모두 12명으로 구성됐는데 이들은 소속 단체나 기관의 추천을 받도록 해 각계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이중 언론의 끊임없는 공적 감시대상인 국회의원을 포함시킨 것은 자율규제기구로서의 성격과는 걸맞지 않는다. 윤리위 추천위원 2명은 관례적으로 신문협회 광고협의회장 등 신문광고인과 문인 중에서 선발해 왔기 때문에 현역 신문· 통신 관계자가 윤리위원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특히 2004년 부터는 윤리위 산하에 신설한 독자불만처리위원을 전직 언론인으로 위촉, 새로 윤리위원으로 추가해 전· 현직 신문관계자의 비율이 12인중 7인에서 13인중 8인으로 더 늘어났다. 그래서 ‘팔이 안으로 굽는’ 폐해를 우려해 위원장을 비정치인· 비 신문인 (관례적으로 대법관 출신 변호사)으로 하고 1명 이상의 비신문인이 출석해야 회의가 열리도록 하고 있다.
      윤리위는 초기에 제소사건 위주로 심의· 결정하던 것을 언론윤리위법 파동이후 심의실이 신설되면서 제소사건 외에 심의실 보고 사건과 윤리위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건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그러다 보니 그 이후로는 심의실 보고 사건이 주 심의대상이 되고 제소사건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더구나 1980년 언론기본법에 의해 언론중재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런 경향이 심화되고 신문윤리위 기능이 급격히 약화됐다. 중재위가 언론 피해에 대해 일정한 법률상 제재기능을 갖고 있어 언론피해 구조요청 대부분이 그 쪽으로 몰릴뿐 아니라 언론보도내용의 심의 및 시정권고라는 윤리적 기능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윤리위의 제재결정은 윤리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나 중재위의 결정은
    ‘재판상 화해’ 같은 법률적 효력을 가진다. 더구나 법원에 반론권을 청구하는 경우 사전에 반드시 중재위의 중재를 거치도록하는 전치(前置)규정 때문에 중재위에 언론불만사건이 몰릴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취재· 보도의 잠재적 내지 현재적 피해자가 중재위를 통해서는 반론권 행사 또는 정정보도 같은 가시적 조치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윤리위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경고· 주의 등 언론사와 윤리위간의 관계로 끝나는 것처럼 보여 중재위 쪽을 선호하게 되기 쉽다.
      언론의 자유와 자율을 지키면서 동시에 언론의 윤리적 수준을 유지하고 책임을 다하겠다는 언론· 언론인의 입장에서는 타율규제기구인 중재위가 언론에 대한 모욕이요, 언론의 자유와 자율을 저해하는 것이지만 언론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피해 구제가 보다 가시적이고 효율적인 쪽을 선호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심지어 신문사간에 보도 분쟁이 발생한 경우까지 신문사들이 윤리위 보다는 중재위나 법원 제소를 선호하는 형편이다. 이러다 보니 윤리위는 언론피해자 및 불만자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윤리위는 심의실의 심리· 보고를 심의· 결정하는 기구로 역할이 축소돼 버렸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윤리위가 심의실의 자체 심의· 보고뿐 아니라 언론피해자 및 독자 불만도 적극적으로 수렴· 처리하는 기구로 거듭나기 위해 2004년 윤리위에 스웨덴의 프레스 옴부즈맨 제도 비슷한 제3자적 자율기구인 독자 불만처리위원제도를 도입했다. 독자불만처리위원은 독자로부터 신문이나 통신의 보도 및 광고 내용에 대한 불만을 제기받아 사전심의를 통해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그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 불만의 상대방 및 해당 언론사의 의견 표명, 전문가의 의견 등을 바탕으로 심의를 실시, 그 결과를 윤리위에 회부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불만처리위원은 불만제기자에 사전심의 결과를 통보하는 등 계속적인 접촉을 유지하게 된다. 독자불만처리위원제도 도입 첫 해인 2004년 3월부터 12월까지 총 114건의 불만을 제기받아 사전심의를 통해 34건은 타 기관에 이첩하고, 38건은 상담처리로 끝냈으며 42건을 윤리위에 회부해 23건은 경고조치하고 19건은 기각했다. 시작치고는 자율규제기구인 윤리위가 다시 언론피해자 및 불만자가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문제는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 위반자에 대해 윤리위가 주로 내리는 주의· 경고 등 제재수단이 약할 뿐 아니라 그 강제성마저 미미해 신문사와 언론인들이 윤리위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윤리위의 심의 결정결과에 대한 보도가 언론의 자의에 맡겨져 심의결과가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그러니 언론피해자 및 불만 제기자가 만족할 만한 결과가 언론보도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만일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모처럼 의욕적으로 시작된 독자불만처리위원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가 과연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6. 한국 신문윤리위원회의 과제
      
      우리 신문윤리위원회가 쇠퇴하게 된 가장 근본적 이유는 법적인 타율규제 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 제도의 도입과 함께 우리 언론계의 신문윤리강령과 자율규제에 대한 무관심에 있다. 우리 신문계는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만들고, 1996년에 대폭 개정까지 해놓고도 윤리강령의 내용도 숙지하지 않고 위반을 밥먹듯 하고 있으며, 윤리위의 심의결정이 있어도 보도는커녕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은 어디까지나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실천이 관건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신문은 ‘본지는 신문윤리강령과 그 실천요강을 준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 신문윤리위에서 공개경고 이상의 제재를 가하면 해당 신문사는 물론 모든 신문이 그 사실을 보도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다른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해당 신문마저 공개경고를 받고도 묵살하거나 보도를 미적거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되면 신문윤리위의 자율제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독자들은 언론 내지는 언론계 스스로의 자율규제기능을 못 믿게 돼 법적인 제재, 타율적 제재를 선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국· 독일· 미국 등 외국에서 신문평의회의 결정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기피와 해당 언론사의 불성실한 대응이 신문평의회의 위기 내지는 종말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을 장기적으로 방치하면 결국 언론에 대한 타율규제· 타율적 개혁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상황이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고, 더욱 강화될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언론의 윤리와 책임에 대한 타율규제의 강화를 막기 위해선 우선 언론인에 대한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의 내면화가 시급하다. 신입기자들은 물론 중견기자들에 대해서도 언론 윤리에 대한 반복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적어도 신문인이라면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은 물론 각 사의 윤리준칙 내용을 철저하게 숙지, 실천토록 해야 한다. 물론 신문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이 너무 이상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 지키기 어렵다는 불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의견이 보편적이고 명분이 있다면 윤리강령을 지키지 못할 규범으로 선반위에 모셔두기 보다는 일부 조항을 현실화해서라도 철저히 지키도록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또 언론의 자율규제란 차원에선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위상과 기능을 강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신문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의 실천여부를 따져 독려하는 기관이 신문윤리위원회인데 그 결정이 너무 솜방망이란 비판이 적지 않다.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위반한 경우의 제재조치는 주의, 비공개경고, 공개경고, 정정, 취소, 사과, 관련자에 대한 징계요구, 경고 불이행 회원사에 대한 일정기간의 회원자격 정지 또는 제명 등인데 제재 결정의 대부분이 주의, 비공개경고이고 공개경고는 지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간 기사의 경우 5.1%, 광고의 경우 1%에 불과했다. 그 이상의 조치는 아예 없다. 공개경고 이상의 제재조치라야 의무적으로 보도돼 언론피해자나 불만제기자들이 조치 결과를 알 수 있는데 공개경고도 드문데다 그나마 보도의무가 다반사로 무시되고 있으니 이들이 신문윤리위의 자율규제기능에 기대와 신뢰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니 법에 의해 설립된 준국가적 기구로 반론권, 정정보도청구권, 추후보도청구권 등 국민의 엑세스권 행사를 사전 조율하고 언론게재 내용에 대한 침해내용 심의 및 시정권고를 통해 독자 불만의 일부를 해소하고 있는 언론중재위원회에 기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재위는 위원을 문광부장관이 위촉하고 그 운영재원을 방송광고 중 일부를 준조세적 징수방법으로 확보한 방송발전기금과 정부 보조로 조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제도자체의 성격에서부터 행정권력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언론중재위원회제도는 언론자유를 규정한 헌법정신과는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그 결정과 침해내용심의 및 시정권고도 언론의 자율규제와는 거리가 먼 언론 간섭이자 통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와 자율이란 차원에선 언론중재위는 폐지해야 마땅한 기구다. 그러나 언론피해자나 불만자로선 보다 효율적인 피해구제기구로 활용돼 온 중재위를 상황의 변화없이 언론자유와 자율만을 이유로 폐지하자는 주장을 수용하기가 어렵다. 여기에 심각한 딜레마가 있다. 이 딜레마를 넘으려면 언론의 자유와 자율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꾸준히 설득하면서 언론자율규제기구의 기능을 강화해 언론피해자의 중재위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길밖에 없다.
      그러자면 첫째, 윤리위 구성부터 언론의 집중보도· 비판 대상인 국회의원 2명을 제외하고 언론학자· 시민단체 대표 등의 참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하고, 윤리위의 제재도 ‘주의’ ‘비공개 경고’ 정도에서 맴돌지 말고 언론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개경고 이상의 제재 비중을 높여 나가는 과감한 변신과 개혁이 요구된다.
      둘째, 세계적으로 언론자율규제기구의 기본 요건 중의 하나인 재정의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 한국신문윤리위는 예산을 모두 신문계에서 부담하지 못하고 있다. 1999년에만 해도 윤리위 예산의 약 3분의 2를 신문협회 회원사의 분담금으로 충당하고 3분의 1정도만 방송 공익자금에서 지원을 받았는데 점점 외부자금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외부자금은 2002년까지 방송공익자금, 2003년 ~ 2005년까지는 국고, 앞으로는 신문발전기금에서 지원될 예정이다. 독자불만처리위원제도가 생긴 2004년부터는 외부자금 의존도가 더욱 커져 2005년의 경우 총예산 6억 8천만원중 신문협회 회원사 분담금은 고작 26.5%인 1억 8천만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5억원은 국고지원을 받고 있다. 자신들의 일을 남의 돈으로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이래선 언론자율규제기구로서의 위상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신문계의 분담금을 늘이고,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위반하거나 독자에게 피해를 준 신문사에 벌칙금을 신설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것으로도 부족할 경우 단기적인 운영경비 보조방식 보다는 외부에서 기금을 모아 장기적으로 그 기금의 지원을 받는 방식이 외부의 입김을 차단하는 데 효과적일 것 같다.
      셋째, 윤리위의 결정사항을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특히 해당언론사는 공개경고 이상의 심의 결정 주문과 이유를 상세하게 보도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신문 기간단체인 신문협회· 편집인협회· 기자협회와 회원사들의 다짐· 결의도 필요하지만, 미디어 오늘· 기자협회보· 편집인협회보 등 언론단체가 발행하는 신문들의 감시활동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적어도 윤리위의 공개경고 이상의 제재를 보도하지 않는 경우 이들 신문들이 그 사실을 빠짐없이 보도하고 비판한다면 그런 행태는 발붙이기 어려워 질 것이다. 윤리위에서도 매달 회보를 발행해 위원회의 심의결정내용을 알리고 지난달 결정에 대한 해당신문사의 성실한 보도의무 이행 여부를 꼼꼼히 짚어나가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

      우리도 선진국 수준의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이루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언론자율규제기구와 사법기관의 2원구조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윤리적인 언론과 독립적이고 효율적인 신문윤리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선행돼야 한다. 자율규제도 제대로 못하면서 언론중재위의 타율규제를 문제삼아 보았자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주요 참고 문헌

      ★ 김옥조, 미디어 윤리, 커뮤니케이션북스, 2004
      ★ 김지운, 글로벌시대의 언론윤리, 커뮤니케이션북스, 2004
      ★ 관훈클럽, 한국언론의 좌표, 관훈클럽, 2000
      ★ 장호순, 언론의 자유와 책임, 한울아카데미, 2004
      ★ 한국신문윤리위, 불만처리보고 (2004년도), 한국신문윤리위, 2005
      ★ 유일상, 신문윤리위원회 40주년, 관훈저널 200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