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세미나] 신문윤리위원회 창립40주년 기념세미나
2001.09.07. - 2001.09.08. / 발제자 : 정진석 / 주제 : 신문윤리 40년 - 평가와 향후 과제
-
조회 : 1162
-
신문윤리 40년 - 평가와 향후 과제
정진석(한국외국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1. 40주년에 더 심각해지는 위기감
언론계의 큰 기대 속에서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창립된 때로부터 만 40주년을 맞게 되었다. 신문윤리위원회는 언론자유를 수호하고 언론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막중한 목적을 지니고 창립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의 격동 속에서 군사정부가 「신문 등 등록법안」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언론계는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힘을 합쳐서 한국 언론 사상 처음으로 1961년 9월 12일에 新聞倫理委員會를 창립한 것이다. 영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윤리위원회를 모델로 하여 가장 이상적이고도 모범적인 신문의 자율 규제기구로 출범하였기에 위원회에 대한 기대도 컸던 것이다.
신문윤리위원회는 창립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서 40여년 간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문윤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심어주는 등의 업적을 남겼으며, 한국의 언론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바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역사를 쌓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40주년을 축하와 장래에 대한 밝은 희망만으로 맞이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도 솔직히 이 자리에서 털어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윤리위원회가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언론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그 근원적인 원인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신문윤리에 대한 언론계 내외의 인식의 변화, 신문윤리위원회의 재정의 빈곤, 윤리위원회의 기능 위축과 이에 따르는 사업의 침체 등을 위기에 직면하게 된 원인으로 지적해 볼 수가 있을 것 같다.
법률기구인 言論仲裁委員會와 放送委員會는 準 司法的 기능을 지니고 있으므로 활동에 필요한 조직 규모와 법적 권위, 그리고 강력한 制裁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데 비해서 자율기구인 신문윤리위원회는 예산이 제한되어 있으며 신문에 대한 制裁力도 미약한 상태인 것이다. 또한 위의 두 법률기구와 업무상으로도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언론 관련 사건을 윤리적인 방향이 아니라 법정으로 가져가는 사회적인 추세도 신문윤리위원회가 외면당하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또 한가지 심각한 제약점은 언론에서 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으며 그 영향력이 막강함에도 불구하고 신문윤리위원회는 이를 전혀 다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 등도 윤리위원회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중대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최근의 여러 언론환경이 윤리위원회의 위상에 심각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신문의 윤리 문제를 제도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돌이켜 보고 이에 대한 평가와 함께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영국 신문평의회의 변모
우리가 모델로 삼았던 영국에서도 자율적인 윤리기구는 10 여년 전에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판정이 났었다. 1953년에 창립되었던 영국의 신문평의회(Press Council)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하고 대표적인 자율규제기구의 표본으로 그 명성이 높았다. 언론평의회가 지닌 목적은 언론자유의 수호와 언론침해를 구제하는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도 영국의 평의회와 마찬가지로 언론의 자유를 수호와 언론침해를 구제하는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출범하였다. 언론에 의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신문윤리위원회에 提訴하는 경우, 같은 사건은 사직당국에 고발하거나 고소 또는 訴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문서로 서약을 하도록(한국신문윤리위원회 회칙 제6조) 되어 있었는데, 이는 영국 언론평의회의 법원제소 포기 동의제(waiver system)와 동일한 것이었다. 많은 국가들이 영국의 언론평의회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고 영연방 국가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이 이와 유사한 평의회를 도입했다.
그러나 영국의 그 세계적인 명성을 지녔던 언론평의회도 언론환경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권위와 효용성이 퇴색하였다. 따라서 의회와 언론계는 언론에 의한 인권과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라는 문제를 놓고 고민과 논쟁 끝에 언론평의회의 대체기구로 언론불만처리위원회(Press Complaints Commission)를 1991년에 구성하였다. 언론불만처리위원회(PCC)는 이전의 평의회 활동이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념하여 「어떻게 불만처리를 신청하는가」라는 안내서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이전에 비해 월등히 개선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기능에 대한 언론계의 평가가 전적으로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영국과는 다른 언론 상황에 직면하여 2 중의 언론 피해관련 기구가 병존하고 있다. 1981년에 언론에 의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새로운 법률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가 구성되어 오늘날까지 순수한 자율기구인 신문윤리위원회와 병존하고 있는 것이다.
3. 신문윤리위원회의 창립 배경
언론의 윤리와 함께 명예훼손, 프라이버시라는 새로운 용어가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시기는 1950년대 후반부터였다. 50년대 초반까지는 혼란과 전쟁의 와중에서 명예훼손에 관해서 차분하게 생각할 여건이 못되었다. 언론의 명예훼손이 법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은 멀리 한말 신문이 처음 나오기 시작한 직후부터였으나 일제치하에는 명예훼손이 언론탄압의 구실로 악용되었던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광복 후 언론은 언론의 침해사례에 대해 언론계는 비교적 무관심하였다.
그러나 언론계도 50년대 후반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57년 4월 7일 제1회 신문의 날을 제정하면서 ‘新聞倫理綱領’을 채택하였는데 언론의 자유, 책임, 독립 등 언론의 자유를 수호할 내용과 함께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 논평의 자세, 개인의 명예를 존중하고 사생활을 보호 할 것 등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4.19 이전까지의 언론은 독재에 반대하는 투쟁과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대의명분에 집착하여 신문의 명예훼손과 인권침해 문제에는 소홀하였다. 4.19 이후에는 언론의 자유가 거의 제한 없이 허용되고 발행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수많은 신문들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언론의 질적인 저하가 뒤따르게 되었다. 이때 언론계에서도 자율정화를 위한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 보려는 언론 자체의 노력이 구체화되기 전에 5.16이 일어났다.
군사정부는 1961년 5월 2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布告 제11호를 공포하여 신문의 일제정비를 단행하면서 言論統制의 차원에서 언론의 윤리와 책임문제를 제기하였다. 이해 7월 28일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은 법제사법위원회가 기초한 「신문 등 등록법안」을 발표하였다.
“책임 있는 언론의 창달”을 목적으로 한다는 이 법안은 두 가지의 독소조항을 담고 있었다. 제 6조 명예훼손 기사의 게재 금지와 제7조 등록의 취소 조항이 그것이었다. 신문과 통신이 사실이 아닌 기사를 게재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였을 경우에는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갖도록 하고, 1년 이내에 3회 이상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기사를 게재하거나 또는 시설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등록을 취소하도록 규정한 내용이었다. 이 법은 그보다 3년 후인 1964년에 공화당이 국회통과까지 시켰던 言論倫理委員會法과 같은 취지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계는 자구책의 일환으로 한국신문윤리위의 구성을 서둘렀다. 책임 있는 신문을 제작함으로써 빈발하는 필화사건을 자율적으로 방지하는 한편으로, 수사 당국이 기사를 문제삼아 언론에 통제를 가하지 못하도록 언론계가 스스로 책임 있는 제작태도를 지키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해 주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취지였다.
최고회의가 「신문 등 등록법안」을 발표한지 3일 뒤인 7월 31일,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한국신문윤리원회 會則을 인준하고, 1957년 4월 7일 신문의 날을 제정할 때에 선언적으로 채택하였던 「신문윤리강령」을 개정하였다. 이어 8월 25일에는 대법관을 지냈던 변호사 金世玩을 윤리위원회 위원장에 선출하고 9월 12일에 신문윤리위원회를 창립하였다.
윤리위원회는 창설 후 처음에는 提訴事件 만을 다루었으나 1964년 공화당정권이 신문윤리위원회법을 제정하려고 시도하자 자체에 審議室을 설치하여 전국의 신문을 매일 자율적으로 심의하도록 했다. 언론의 책임과 윤리문제를 법에 따라 다룰 것이 아니라 언론계가 스스로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외부의 간여를 방지하겠다는 취지였다.
이리하여 지금까지 법률에 의해서만 다루어왔던 명예훼손 및 인권침해 문제를 언론계의 자율적인 기구에서 다룰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신문윤리위원회는 자율기구였기 때문에 언론침해를 법에 호소할 수 있는 길은 그대로 열려 있어서, 피해자가 언론을 상대로 윤리적 측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함께 법에 의해 피해를 보상받는 길도 공존하게 된 것이다.
신문윤리위원회가 설립되면서 언론의 책임과 이에 따르는 윤리에 대한 개념은 진일보하였다. 윤리위원회가 그 기능을 강화한 이듬해인 1965에는 36건에 이르는 많은 제소가 있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제소건수가 줄어들다가 1978년 이후에는 단 한 건의 제소도 없게되고 말았다. 이는 윤리위원회의 설립 취지가 매우 이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에 있어서 시대상황에 부응하지 못한 점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鄭晉錫, 「한국언론의 법, 윤리 환경의 변화」, 『言論仲裁』, 1990. 봄, pp. 6-14.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창립 이후에는 법적 처리와 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규제의 두 가지 방법이 병행되었는데, 1981년에는 언론중재위원회가 창설되어 법적 前置機構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언론중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언론침해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크게 높아졌다.
4. 환경변화 수용, 제재 건수 증가
신문윤리위원회는 언론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1996년에는 신문윤리강령과 그 실천요강을 현실에 맞도록 수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한해 2000년도의 통계만 보더라도 위반사례를 제재한 총 건수는 499건에 달하는 것을 보더라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윤리위원회의 활동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 전해인 1999년과 비교할 때에 109건이 늘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는 공개경고 14건을 비롯해서 비공개 경고(86건), 주의(217건) 등이었다. 선정적인 보도와 개인의 명예 및 신용 훼손, 과대광고 등 언론의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이 미흡한 신문에 대한 윤리위원회의 제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윤리위원회의 이 같은 노력은 대외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신문이 자율기구인 윤리위원회의 결정을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윤리위원회가 창립된 이래 모든 신문이 신문윤리강령과 그 실천요강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판권과 함께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서약은 형식에 그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한 서약을 하고서도 윤리강령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强度는 크게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 한해동안 윤리위원회가 14건의 「공개경고」 결정을 내렸지만 독자들은 그러한 사실이 있었는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만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해당 신문 어느 구석에 공개경고 사실을 보도했겠지만 그 효과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둘째, 윤리위원회는 창립이래 신문의 윤리 문제에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언론에 의한 인권 침해가 늘어나고, 언론으로부터 피해 입은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를 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위원회를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영국의 신문평의회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기능과 효율성에 대해 점차 회의를 품게 되었고 불만이 일어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이 있었다. 발족 당시에는 25명의 평의원을 전원 “언론계 대표”만으로 구성하였다. 그러나 1962년의 제 2차 왕실신문위원회의 권유에 따라 이듬해에는 비 언론인을 위원으로 영입하여 25명의 위원 가운데 5명을 비 언론인으로 하고 위원장도 비 언론 출신으로 선임하였다.
1973년에는 다시 비 언론 출신 5명을 추가하여 30명의 위원 가운데 10명이 비 언론 출신이 되었다. 또 1978년에는 언론과 비 언론 출신을 同數로 조정하고 여기에 비 언론 출신의 법조인을 위원장으로 추가하여 비 언론 출신이 더 많은 수를 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몇 차례의 개편으로도 언론의 사생활 및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기구가 되지 못하며 “심판기구로서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평의회의 존재 자체가 일반 공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이용자가 한정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Report of the Committee on Privacy and Related Matters, June 1990, pp. 63-64.
해체를 결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문평의회를 해체한 후 1991년 1월 18개월의 한시적인 ‘신문불만처리위원회(PCC)’를 발족한 것이다. 신문평의회의 해체에 대해서 1992년 10월에 발표한 PCC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난 40여년 동안 영국에서는 자율적인 신문평의회가 있어 왔다. 언론에 대한 강도 높은 윤리기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언론 자신이 설립하고 재정을 조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언론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봉사에도 불구하고 신문평의회는 지난 10년 동안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신문평의회는 실천요강(Code of Practice)의 제정을 수년동안 완강히 거부하다가 1990년 3월 뒤늦게 이를 채택하였다.” Submission to the Review of Press Self-Regulation, Press Complaints Commission, p.11.
신문평의회의 쇠퇴?불신?해체에까지 이르는 문제점들은 ① 신문평의회에 제소하는 사건은 법원에 제소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원제소 포기 동의제(waiver system), ② 평결시에 의존할 실용적 준칙결여, ③ 제재의 비효율성 등도 있었다. 김지운, 「영국 신문평의회의 해체와 한국 신문윤리위원회의 전도」, 『신문과 방송』,
한국의 신문윤리위원회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모델로 삼았던 영국의 신문평의회와 비슷한 문제점에 봉착하였다. 그런데 1981년에 법률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신문윤리위원회는 더욱 소외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5. 언론윤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
80년대 이후에는 한국에서도 언론이 자유의 신장이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추구하는 동시에 이에 따르는 책임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언론에 의한 인권의 침해를 방지하고 보상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단계가 되었다는 인식이 언론과 법조계, 정부 및 정치권,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1980년대부터 언론침해에 대한 구제제도를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법률기구로 언론중재위원회를 설치한 후에는 구제제도의 당위성에 대한 언론계의 새로운 인식이 점차 높아졌고, 인권과 명예를 중요시하는 사회의 전반적인 추세, 일반 국민의 권리의식 앙양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던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언론침해에 대한 구제제도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되었다는 역사적인 배경이다.
역사적으로 한국 언론의 발달 초기부터 일제치하에 걸치는 기간동안 언론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刑法과 新聞紙法에 의한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민법에 의한 손해배상의 개념은 없거나 희박하였다.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개념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50년대 후반에야 도입되었다.
1961년 신문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이후에는 언론 침해를 구제 받기 위한 제소의 방법이 마련되었지만, 사회적인 제도로 정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하였고, 윤리위원회에 제소를 했더라도 신문이 납득하고, 피해자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웠다는 점 등으로 인해서 보편적으로 통용되지 못하였다. 영국도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문평의회를 해체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피해자가 구제 받는 길은 법원에 제소하는 방법이 있었으나 절차와 비용 등 일반인이 언론기관을 상대로 간편히 대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법적인 전치기구로서 언론중재위원회가 설립된 것은 이와 같은 역사적 전개과정을 거친 끝에 사회적인 필요성에 부응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80년대에는 한국 사회가 전반적인 민주화의 진행에 따라 인권과 명예를 중요시하게되는 언론환경의 변화라는 시대적 추세에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에는 인권침해를 방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중재위원회와 편집인협회를 비롯한 각 언론단체가 세미나, 토론회 등을 활발히 열었던 것도 언론환경의 변화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토론회들은 80년대 초의 언론이 보도의 자유와 개인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미묘한 조화점을 어떻게 찾아야하며 보도로 인한 분쟁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가 전개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80년대 초부터 언론의 인권 침해문제가 크게 부각된 것은 개인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높아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문제를 정면에서 깊이 있게 다루기 어렵게 되어있었으므로 사회문제에 대한 보도 경쟁이 치열했고 이에 따른 결과로 언론의 인권침해 사례가 빈발하게 되었던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세번째로는 언론침해를 당한 개인과 단체 또는 기관 등의 권리의식이 크게 높아진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언론중재위원회를 비롯하여 언론계의 각 분야에서 언론침해를 구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계몽하고 중재위원회가 간편한 절차에 의해서 효율적으로 처리해 주게 되었다는 점도 피해자를 크게 고무해 주었다. 이에 따라 80년대 이후에는 언론을 상대로 하여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중재신청이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법적 절차에 따라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소송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중재신청 또는 법원제소의 사례를 보면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중재신청의 건수는 1981년부터 1988년까지는 1년에 대개 적은 해에는 40여건 정도에서 많은 해에는 70여건 정도에 머물었으나 1988년부터 늘어나는 경향을 보여 1989년에는 121건을 넘어선 이후에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중재신청이 늘어나는 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분석할 수 있다. 하나는 1987년의 6.29 선언 이후 신문과 잡지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매체의 수적 증가는 일부 언론의 질적인 저하를 가져오는 요소가 되었다. 사이비언론이 나타나고 언론침해의 사례도 비례해서 늘어났던 것이다. 잡지의 명예훼손과 인권침해 사례도 늘어났다. 특히 잡지가 80년대에 대량판매를 위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지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던 현상이다. 언론 침해에 대한 구제제도가 정착하고 이에 대한 권리의식이 고양되고 있는 시기에 잡지는 오히려 시대상황을 역행하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는 여성지와 스포츠 신문들의 명예훼손 기사가 늘어났는데, 대 신문사가 발행하는 잡지 가운데도 취재한 내용을 왜곡하거나 취재하지 않은 내용을 조작하는 등의 고의성 있는 침해사례도 적지 않아서 언론의 새로운 윤리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언론 침해에 대해 피해자들이 이를 묵과하지 않고 스스로의 권익과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중재위원회를 통해서 간편한 절차로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법원에 제소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네 번째로는 피해자의 인권보호와 관련하여 법조계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언론침해에 대한 판례도 많이 나왔는데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추세가 두드러졌다. 대법원이 1982년 2월25일 「법정에서의 방청 촬영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의결하여 법정에서의 촬영에는 재판부의 허가와 원고 및 피고의 동의를 구하도록 한 것도 언론침해를 막으려는 사법부의 배려라 할 수 있다. 이미 촬영된 사진이라도 본인의 사전 동의 없이는 출판물에 게재해서는 안 된다는 ‘초상권’에 관한 판결이 1982년 7월 24일 서울 민사지법에서 처음으로 나왔던 것도 이러한 추세의 반영이었고, 개인의 권익보호를 위한 법원의 새로운 해석이기도 하였다.
법적인 절차를 밟아 명예를 회복하고 금전적인 보상을 받으려 했을 때에 법원이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사건을 다루는 판례가 많이 나왔다. 1981년 이후 1990년까지 언론관계 분쟁으로 인한 법원의 판결은 신문에 보도된 것 가운데 중재위원회가 입수한 것만 해도 모두 46건에 달하였다. 『國內 言論關係判例集』, 언론중재위원회, 1990, 참고.
1980년대 이전에는 언론침해에 대한 법원판결이 아주 희소했던 사실과 대비한다면 급속한 증가였으며, 신문에 보도되지 않은 사례도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소송사건을 내용별로 보면 정정보도 청구사례가 28건, 손해배상 및 위자료 배상이 15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사례가 3건 등이다. 이는 법원이 명예훼손과 인권침해에 대해 시대조류에 부응할 수 있도록 그 해석 범위를 융통성 있게 넓혀 주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전까지는 언론이 무심코 지나치거나, 하나의 관행으로 보도하던 내용에 관해서도 신중한 자세를 갖게 되었다. 법정 소송의 경우 판결 이전에 고소인이 취하하는 경우도 많기는 하지만 고법, 대법 등의 상소심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늘어났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이는 명예훼손 또는 피해보상에 대해 법원의 최종 판례를 남기게 되는 일이 80년대 들어 여러 차례 나타났음을 뜻하는 것이다.
6. 신문윤리위원회의 향후 과제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198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여년의 언론상황이 급격한 변화를 겪는 동안 윤리위원회가 차지하는 언론계에서 위상은 점차 위축된 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이 직면한 새로운 상황은 모든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서 강력한 제재를 받도록 하려는 풍조가 휩쓸고 있는 풍조이다. 그것도 약한 입장의 피해자가 신문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사건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위로는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국민의 정부”의 대통령이 언론관련 소송을 제기하는 상황이 되었다. 판사, 검사, 변호사와 같은 법조인, 경찰, 신부, 목사와 같은 성직자 등에 이르기까지 언론을 상대로 민사 또는 형사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최근에는 언론계 내부도 완전히 양분되어 소송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신문과 신문간에, 신문과 방송 사이에 거액의 소송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신문의 윤리는 어디로 갔는지 살벌한 소송이 범람하고 있다. 일찍이 없었던 언론계 내부의 갈등을 법정에서 판가름해야할 판국이다. 이 같은 상황이니 신문윤리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신문윤리위원회의 향후 과제는 어떤 것일까. 한국의 신문윤리 발전에 노력을 기울여온 40여년의 소중한 역사와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향후의 과제를 설정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운영 재원을 확보하는 문제이다.
윤리위원회의 인력으로는 늘어난 신문의 숫자와 하루에 수십 페이지가 발행되고 있는 신문의 지면을 심의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실정이다. 따라서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의 확보, 사업 예산의 확충, 윤리위원회의 결정사항을 홍보할 수 있는 예산의 확보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현재 예산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방송발전기금은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며 현상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윤리위원회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재원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2) 시대상황에 맞는 윤리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오늘의 언론상황에서 윤리위원회의 위상은 점차로 위축되는 감을 느낀다. 신문의 윤리를 외설적인 내용 또는 명예훼손과 같은 고전적인 문제에 국한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폭넓고 시대상황에 맞는 윤리의 범주를 규정해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이 미성년자 實名報道의 부주의, 또는 猥褻的인 소설, 만화 등에 제재를 가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性의 개방화 추세, 방송매체의 발전, 인터넷, 비디오, 성인만화 등의 확산으로 40년 전과는 ‘외설’의 개념도 크게 달라졌다. 이같은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심의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3) 언론사간의 윤리문제 논의.
언론사 사이에도 제소사건이 자꾸 늘어나는 상황이다. 피해를 입은 개인이 언론을 상대로 하는 소송은 늘어나더라도 언론이 성실하게 대응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권력자가 소송하는 것은 삼가도록 해야 한다. 신문, 방송 등의 언론기관이 상대방을 고소하는 현실은 더욱 삼가야 할 것이다. 언론사 사이에 상호 감시와 비판은 있어야 하겠지만, 저의가 담긴 비방은 자제하도록 해야한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윤리위원회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 이를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윤리위원회는 창립의 취지로 볼 때에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기능도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윤리위원회는 “책임 있는 언론을 실행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강령의 첫 머리에 명시하고 있다. 언론사간의 비판의 한계를 넘어선 상호 비방, 언론사간의 고소, 언론사 세무조사에 관해서 국제적으로 주시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신문윤리위원회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지 깊이 고뇌하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모색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