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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75차 심의결정 현황 /  [기사] 신문윤리강령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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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84 정숙아, 너의 ‘존버’를 응원해!

한겨레         발행인  최  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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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문

      한겨레 2023년 4월 27일자 24면「정숙아, 너의 ‘존버’를 응원해!」제목의 기사
    에 대하여 ‘주의’ 조처한다.
     

  • 이 유

      1. 한겨레는 위 적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정숙아, 언니야. 너 76이니까 말 놓을게. 아니, 그냥 친구 먹자. 우리 같은 엑스(X)세대 아니겠니? 너네 76들은 72는 엑스세대 아니라고 선 그으려고 하더라. 완경 레이스도 이제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마당에 그냥 친구라고 생각할게.
      며칠 전에 네가 한 말, 친구들 사이에서 난리 났어. 월드컵 한일전에서 골 넣은 것 같은 분위기였다니까. 남편 무슨 일 하냐는 말에 니가 “죽었어요”라고 말했을 때 말이야. 건너편에 있던 네 남편이 마시던 술을 분수처럼 내뿜었잖아. (JTBC 드라마 < 닥터 차정숙 >) 그때 맥주 마시며 보다가 같이 뿜었다는 애들이 한두명이 아니야. 드라마 보다가 십년 묵은 체기 뻥 뚫어지는 핵사이다, 진짜 오랜만이라고.
      주변에 너처럼 참고 사는 애들 한두명이 아니었잖아. 대학 과 커플로 결혼한 미영이, 걔 시집 내려갈 때마다 당신 아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공부 잘했는지, 그런 남편 만난 미영이가 얼마나 운 좋은지 시아버지한테 이십년째 귀에 피딱지 앉게 듣는 거 알지? 미영이는 심지어 장학생이었는데 말야. 지혜는 몇년 전에 시집 식구들이 가족여행에 빠지면 안 된다고 성화해서 친정엄마 수술할 때 병원도 못갔던 거 기억해? 돈 있는 시어머니가 애들 학원비 대주는 거 두번이나 이야기하면서 가자고 했다잖아. 그런 일 있을 때마다 슬쩍 링 밖으로 내려와서 팔짱 끼고 딴 데 보는 남편, 갖다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었겠어?
      네가 말했지. “우아하고 완벽했던 나의 아름다운 가족, 그들에게 난 무엇이었을까?” 뭐긴 뭐겠어. 확인사살은 안할게. 그런데 말야 ‘우아하고 완벽한 가족’이란 어떤 걸까. 먼지 한톨 없이 예쁘게 꾸며진 집에 의사 남편과 의사 아들, 모범생 딸? 써놓고 보니 부럽긴 하다. 하지만 배 아파서 하는 이야기는 아냐. 따져봐봐. 이십년 넘게 뼈 빠지게 쓸고 닦고 했어도 공동명의는 꿈도 못꾸는 집? 아침마다 반찬 투정에 짜증내는 딸내미? 너 무시하는 병원 레지던트 선배와 연애하는 아들? 주차 좀 편하게 하자고 간이식 받은 너한테 장애인 등록하라고 닦달하고 물건 살 때는 최저가 검색해서 온라인 주문하라고 잔소리하면서 불륜 여친한테는 오백만원짜리 팔찌 사주는 네 남편? 이 중에 뭐가 우아하고 뭐가 완벽하지?
      너네 집이 잘못됐다는 게 아냐. 개발에 땀 나게 맞벌이하며 대출이자에 허덕이는 미영이네나 칠십평 고급빌라 사는 전업주부 지혜네라고 다르겠니. 우리 집구석은, 응, 그냥 생략할게. 일찍이 미드 < 위기의 주부들 >이 설파했잖아. 모든 집에는 밖에 내놓을 수 없는 각자의 쓰레기통이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난 네가 안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너도 인정하잖아. 대학병원 교수 사모님, 청담동 며느리라는 타이틀에 어깨 으쓱하며 그게 완벽한 인생인 줄 알면서 살아왔다고. 사실 타이틀에 목숨 거는 대한민국에서 그 정도 속물성이야 전국민 기본장착 수준이니 너한테 뭐라고 할 것도 아니지.
      그래도 네가 죽다 살아나면서 인생의 현타를 느끼게 돼 기뻐. 한 집안의 호구로 백살을 살다가 숨넘어가는 순간 현타가 오는 것보다는 훨씬 다행스러운 일이지 뭐야. 인간이 나이 들며 성숙해진다는 건 네게 온 것과 같은 현타를 경험하는 거 아니겠어? 타이틀, 남들 시선,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 이런 거 다 부질없다는 깨달음 말야.
      오십살은 모든 것이 결정된 나이라고들 생각하잖아. 오십을 코앞에 두고 “다른 미래를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너 정말 존경스러워. 요즘 너뿐만도 아냐. 너랑 동갑인 황도희(< 퀸메이커 >)는 잘나가던 회사 때려치우고 그 험한 정치 선거판에 뛰어들었더라. 너만큼이나 부잣집 사모님 코스프레에 지루해 하던 이화(< 종이달 >)는 은행 인턴으로 ‘경단녀’ 재취업을 하더니 젊은 남자랑 아주 그냥 난리 났어. 미디어 속 ‘완벽한 나의 가족’ 신화가 점점 깨지고 있는 거지.
      같이 바쁜 아들한테 자꾸 캐묻고 고3인 딸한테 신경 못쓴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 말은 신경도 쓰지 마. 혼자 사는 노후에 관한 글을 많이 쓴 일본 작가 우에노 치즈코는 자식에게 짐되는 걸 두려워하는 부모들을 향해 “감당할 수 있는 부담이라면 가족에게 도움받는 게 벌 받을 일은 아니”라고 했어. 친족법에 한 가족 호구담당은 엄마라고 적혀있는 것도 아니고 말야. 아들뿐 아니라 동료들한테도 많이 물어보고 필요할 때는 도움도 부탁해. 안 그래도 못마땅한 늙은 아줌마가 민폐 끼친다고 트집 잡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래 봤자 욕이 배 뚫고 들어오는 거 아니잖아? 참, 너 근데 예고편 보니까 그만두겠다고 그러는 거 같더라. 정신 차려, 이것아. 너 이십년 삼십년 일한 친구들은 막 보람 넘치고 자아실현 만랩하고 그럴 거 같지? 그냥 ‘존버’야. 정숙아 인생은 ‘존버’야. 너의 존버와 인생 턴어라운드를 응원해!』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89534.html >
      2. 위 기사에 대하여 윤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한겨레의 위 기사는 방송 드라마「닥터 차정숙」에 관한 기자 칼럼이다. 칼럼의 제목은「정숙아, 너의 ‘존버’를 응원해!」이다. 기사의 맨 마지막 부분에는『그냥 ‘존버’야. 정숙아 인생은 ‘존버’야. 너의 존버와 인생 턴어라운드를 응원해!』라고 기술돼 있다.
      ‘존버’는 ‘존나(졸라) 버틴다’라는 뜻이고, ‘존나’의 어원은 욕으로부터 유래한 비속어(卑俗語)다. 엄청 힘든 과정을 거치는 중이거나 참는 상황을 빗댄 용어이다. 주식 또는 코인투자에서 자주 사용돼 비속어의 의미가 다소 퇴색됐다고는 하나 신문 기사에 쓸 만한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표현은 ‘보도기사를 작성할 때는 표준어 사용을 원칙으로 하며, 저급한 비속어 사용 등으로 독자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한다’는 신문윤리실천요강의 규정에 어긋난다. 이런 보도 태도는 신문의 신뢰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으므로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보도준칙」⑩(표준어 사용)을 위반했다고 인정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 적용 조항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보도준칙」⑩(표준어 사용)